스킵네비게이션

마을소개

단장면 전경

단장면은 시청으로부터 동북방향으로 15km 떨어진 산간지역으로 옛날에는 부경 중의 태산이라 일렀고, 지금은 영남알프스라고도 불리우는 재약산(주봉1189m)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북쪽 그리고 남쪽 셋 방향으로 1000m내외의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서 있는 산중의 별구 이다. 신라 흥덕왕 4년(829년)에 서역의 중인 黃面禪師가 창건했다고 하는 표충사를 주위에 23종의 문화유산이 산재하고 있으며, 재약산 일대 자연경관과 사자평은 전국적으로 관광지로서의 명성이 높을 뿐 아니라, 4개소의 자연발생유원지를 비롯하여 곳곳에 유원지가 소재, 깊은 골과 맑은 물을 자랑하고 있다. 특산품으로 대추, 한천, 표고버섯, 맥문동이 생산되며,특히 대추와 한천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생산지이며, 표고버섯과 맥문동은 밀양의 대표적인 상품이다.

단장마을

단장마을 전경

동남쪽으로 계령산(桂嶺山)과 가내봉(佳來峯)이 마을을 에워싸고, 북서쪽으로 단장천이 휘돌아 나가는 곳에 독뫼인 경주산(競珠山)(216m)을 마주 바라보고 있는 아늑한 고촌이다 김해김씨,밀양박씨,여주이씨, 경주최씨, 인동장씨(7호)의 집성촌으로 주소득으로 대추, 맥문동, 벼, 노지깻잎 등을 재배하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소개

마을약사(전설)

세종실록 지리지에 밀양도호부 관내에 도기소(陶器所) 한 군데가 있는데 그 소재지가 부동(府東)의 단장리라 하였고,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이존 록(彛尊錄)'에는 세종 때 대마도 정벌을 하다가 전사한 그의 외조부 박홍 신(朴弘信)의 유의(遺衣)를 묻은 가묘(假墓)가 단장리에 있다고 했다. 또 조선조 전기의 인물인 진사 변홍민(卞弘民)이 단봉정(丹鳳亭)이란 정자를 짓고 이 마을에 살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단장리란 마을 이름은 조선 초기 부터 있어 온 것임을 알 수 있고, 단봉정(丹鳳亭)에서 유래한 단정(丹亭)이 란 다른 이름도 전해온다. 단장(丹墻) 또는 단전(丹田)이란 지명 표기가 있 으나 이는 단장(丹場), 단정(丹亭)에서 음을 취한 것이며, 단구(丹邱, 丹丘) 또는 조양(朝陽)이란 지명은 신선이 살고 봉황이 깃 던 마을이라는 뜻으로 아름답게 붙인 것이다. 1890년 경에 농은(農隱) 이종곤(李鍾崑)이 입촌(入 村)하여 단구정사(丹丘精舍)를 짓고 거주지를 삼았으며, 뒤이어 금주(錦洲) 허채(許埰), 포헌(苞軒) 허대(許垈) 형제가 金海에서 이주하여 주산서당(珠 山書堂)을 세워 후진을 敎育하기도 했다. 또 같은 시기에 주운 조훈(趙勳), 동추(同樞) 김만주(金萬胄) 등도 정착함으로서 마을은 여주(驪州) 이씨, 김 해 허씨, 함안(咸安) 조씨, 김해 김씨. 밀성 박씨 등의 세거지(世居地)가 되 었다. 이 마을의 동쪽 산 너머엔 태룔리가 이웃해 있고, 북쪽과 서쪽에는 단장천, 금수(錦水)를 사이에 두고 산외면과 면계(面界)를 이루었으며, 남 쪽으로는 미촌리(美村里)와 경계가 지어졌다. 1906년 이래 단장면 사무소 의 소재지로서 면행정(面行政)의 중심지가 되었으나 그 후에 사무소를 태 용리(台龍里)로 이전한 뒤에는 그 자리를 확장하여 홍제중학교를 세워 지 금에 이르렀다. 1920년 경에 우강(宇岡) 이병래(李炳來), 계동(桂東) 이병 년(李炳年), 중와(中窩) 허석, 하인(何人) 허연(許鉛), 김문수(金文洙) 등이 동민을 규합하여 세운 조양서당(朝陽書堂)이 있었고, 참봉(參奉) 안홍원(安 弘遠)이 금수(錦水)의 남쪽에 금수정(錦水亭)을 세우기도 했으나 지금은 모두 그 자취만 남았다.

유물, 유적

허씨고가
  • 허씨고가 : 문화재 자료 제110호로 1890년 (고종27)경에 구한말 학자 허채가 김해에서 단장면 단장리에 이거해오면서 지은 저택이다.조선조 후기 목조 기와집으로 정침과 중사랑,가묘,창고 등이 있으며,근대 유학자 허석,허섭등을 배출한 대가람이다.
  • 주산정 : 경주산 북쪽 기슭에 자리잡은 김해 허씨의 정자이며 이마을에 입촌한 후손들이 제자들을 모아 講學하돈 곳이라 하여 주산서당이라고 하였다.

풍수지리 및 주요지명

  • 단장본동(丹場本洞), 단정(丹亭), 가라골(험곡, 가래곡(佳來谷), 정곡면곡), 주산정(珠山亭), 정질미(경주산(競珠山), 慶州山), 서당골(書堂谷), 창마(倉 村), 선숲(단장숲, 선수(仙藪)

지명유래

  • 단장본동(丹場本洞), 단정(丹亭) : 단장리는 본동과 창마(倉村)로 나누어져 있고, 본동은 다시 큰골(大谷), 가라골(정谷), 아래각단(下村) 등 세 땅으로 구성되어 있다.
  • 가라골(험곡, 가래곡(佳來谷), 정곡면곡) : 본동의 북쪽 냇가에 있는 마을인데 가래봉 아래쪽에 있는 골짜기라 하여 얻어진 지명이다. 또 가락(전정자)처럼 가늘고 기다란 골짜기란 뜻에서 가락골 이라고도 하며, 옛날 이 냇가에 걸인들의 수용소가 있었다하여 갈(면)골이 가라골로 변했다고도 한다.
  • 주산정(珠山亭) : 단장 본동의 앞산인 경주산(競珠山) 북쪽 기슭에 자리 잡은 김해 허씨의 정자이다. 이 마을에 입촌한 금주(錦洲) 허공(許供)이 제자들을 모아 강학(講 學)하던 곳이라 하여 주산서당이라고도 하였다. 1898년에 그 아들인 중와(中窩) 허공(許公)이 지었다.
  • 정질미(경주산(競珠山). 慶州山) : 단장 본동 북쪽에 있는 독산로 높이 216m이다. 경주산의 음이 바뀌어 정질미가 되었는데 경주(競珠)는 구슬을 다투어 뺏는다는 뜻이다. 이 독산를 둘 러싸고 있는 산은 용암산(龍岩山), 또는 용회산(龍回山) 등 마치 용처럼 생 긴 여섯 개의 봉우리가 구슬처럼 동그랗게 앉은 이 산을 다투어 빼앗을 것 같은 형상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 얽힌 전설로는 아득한 옛날에 옥황상제의 명령을 받은 마고(麻姑) 할미가 이 산을 경주에 갖다 놓기 위하여 짊어지고 가다가 등글매의 밧줄이 끊어져 이 자리에 떨어뜨렸다고 한다. 그래서 경주 산(慶州山) 또는 정질뫼, 등글메(山)라는 지명이 생겼다.
  • 서당골(書堂谷) : 원래 이 곳은 조선조 초기에 진사 변홍민(卞弘民)이 살던 집터였으나, 1920 년경에 동민들이 자제들의 교육을 위하여 조양서당(朝陽書堂)을 세웠다. 해 방 직후 서당은 폐쇠되었고 건물은 마을 가운데로 옮겨져 현재 노인정으로 사용하고 있다. 조양재(朝陽齋)라는 현판이 노인정에 걸려 있고 서당계(書堂 契)가 존속되고 있다. 음달산 아래쪽에 계곡을 끼고 있어 경치도 좋은 곳이다.
  • 창마(倉村) : 단장 본동에서 태롱리 용회동으로 가는 길목 왼쪽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조선조 후기 이곳에 밀양부의 외동창(外東倉)을 두었다 하여 창마(倉村)가 되었다. 그 후 창고를 산외면 금곡리로 이전했으므로 구동창(舊東倉)이라 불렀다. 그리하여 한 때는 단장 본동과 아울러 법정리의 이름을 구동창리 (舊東倉里)라고도 하였다. 해방 전후에는 불과 2, 3호의 주민이 마을을 지켰 으나 지금은 수십 호의 민가가 들어서 있다.
  • 선숲(단장숲, 선수(仙藪) : 창마에서 용회동으로 건너가는 단장천 남쪽제방에 조성된 오래된 숲이다. 부엉디미에서 사당소까지 약 1000m에 이르는 긴 자연림으로 수백 년 묵은 잡목이 울창한 곳이다. 숲 한가운데로 관개용 수로가 푸르게 흘러 봄, 여름, 가을에는 동민들의 휴양처로서도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신선들이 소요하는 숲이라 하여 선숲이란 지명이 생겼는데 근래에는 관광지로서도 각광을 받아 단장숲으로도 알려져 있다.

만족도조사

현재 열람하신 페이지를 평가해 주세요.

평가:
  • 담당자 : 단장면 전화 : 055-359-6684
  • 수정일 : 2020.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