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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소개

교동 전경 교동은 마을 중심에 밀양향교가 소재하고 있어 향교리, 교리라고 부른 것에서 기인한다. 조선시대 밀양부 부내면(府內面) 지역으로 1918년 밀성군 밀양면(密陽面)으로 개칭되었다. 그 후 1931년 밀양읍(密陽邑)으로 승격되어 밀양읍 교리(校里)라고 칭하다가 1989년 밀양읍이 시로 승격되어 밀양시 교동(校洞)으로 개칭되었다.
1995년 밀양시와 밀양군이 합친 도농복합형태의 밀양시가 되어 현재까지 밀양시 교동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교동은 추화산성, 밀양향교, 오연정, 손씨고가 등 문화재가 소재하고 있는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고장으로 국도 25선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관통하여 교통이 발달한 지역으로 시청, 시립박물관, 미리벌관, 밀양대공원 등 주요 공공시설이 위치하고 밀양아리랑아트센터, 배드민턴경기장 건립으로 문화․예술․체육의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는 지역임

추화산성(推火山城)-경상남도지정 기념물 제 94호

추화산성(推火山城)이란?

추화산장승

추화산성은 우리시 교동 산9~16번지 일대, 해발 약240m에 달하는 추화산의 8부 능선에 위치한 약1,430m의 성으로써 신라말 또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최근 복원작업을 벌이고 있는 읍성이 축조 되기전까지 밀양을 다스리던 중요한 관청이 있던 곳이었다.

성벽은 지역에 따라서 조금씩 다른데 석성부분이 많고 토성혼축부분은 적은 편이며, 토성혼축부분의 축조 수법으로는 경사면의 기단부는 들여쌓기 방식을 취했고 성의 하단부는 외벽을 석성으로 하고 그속에 흙을 겹으로 채워 쌓은 테뫼성의 형태이다.

이 성에는 남문, 동문, 북문 등 3개의 성문과 서쪽 상단부에 있는 봉수대, 북문지 부근의 건물지를 비롯해서 산성을 만들려면 필수적으로 성안에 물이 있어야 하는데 이 산성에도 연못 1곳과 우물 2곳이 북문지 부근에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또 한가지 특이한 사항은 동국여지승람이나 향토지인 밀주지, 밀주구지, 교남지, 밀양읍지 등에서 밝혀 놓았듯이 밀양 손씨 중시조로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삼중대광사도광리군(三重大匡司徒廣理君)으로 봉해지고 밀양의 수호신으로 추앙을 받았던 손긍훈(孫兢訓)의 소상(塑像)을 모신 성황사가 성내 중심부 정상에 있었다. [城隍祠 在推火山 世傳府使孫兢訓佐高麗太祖有功 追贈三重大匡司徒封廣理君 卽祠神也]

성황사

성황사는 고려시대부터 손긍훈만을 수호신으로 모신 사당이었으나 고종 31년(1894)에 새로히 북방식 건물형태의 신 성황사를 만들때 본래 성황사의 뒤편에 있으면서 밀성 박씨 문중에서 모시던 밀성 박씨의 상조인 삼한벽공도대장(三韓壁控都大將) 박욱(朴郁)의 초상도 각각 부인의 초상과 함께 이곳에 모셨지만 지금은 훼철되어 버렸다.

손긍훈의 소상이 언제 목상으로 바뀌었는지는 알길이 없고 거의 동시대에 만들어진 박욱의 목상도 있었는데 손긍훈의 목상은 춘복제로 옮겨졌다가 지금은 밀양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박욱의 목상은 익성제에 모셔져 있다.

  추화산성 봉수대
그리고 이곳에 있는 봉수대가 또 중요한데, 봉수대에 관해서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봉수(烽燧)는 국경 변방의 긴급한 상황을 조정 또는 변경의 기지에 알리는 군사상의 목적으로 설치된 통신수단이다. 산정과 산정을 잇는 봉수대는 밤에는 횃불(烽)로서, 낮에는 연기(燧)로서 신호하여 의사를 전달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봉수의 기운은 가락국의 수로왕이 허황후를 맞이할 때 "봉화로 신호했다"는 『삼국사기 가락국기(三國史記 駕洛國記)』의 기록을 근거로하고 국법으로 봉수제도가 확립된 시기는 고려 의종3년(AD1149)이다.

봉수의 중요 연락 노선은 함경도의 경흥, 경상도의 동래, 평안도의 강계와 의주, 전라도의 순천 등 다섯군데를 기점으로 하여 모두 서울의 남산(목면산:木覓山)을 종점으로 연결하였는데 이 다섯군데를 직봉(直烽)이라 하였고, 보조노선을 간봉(間烽)이라 하였는데 두 노선이 교차되는 것을 합봉(合烽)이라 하였다.

손긍훈 목상(도문화재자료 제214호), 박욱목상(도문화재자료 제 213호)
봉수의 신호체계(信號體系)는 평일에는 연기를 1번 올리고, 적이 나타나면 2번, 적이 국경 가까이 접근했을 때 3번, 국경을 침범했을때는 4번, 교전(交戰)이 붙으면 5번을 올렸다. 그러나 구름이 많거나 바람이 심하게 불면 봉수신호(烽燧信號)가 불가능하므로 봉군(烽軍)이 차례로 달리거나 역참(驛站)의 말(馬)을 이용하여 위급함을 알렸다.

우리 밀양에는 백산봉수(임란이후 설치), 남산봉수(제2봉), 추화산봉수, 분항상봉수가 있었는데 고종31년(AD1894)에 봉수제도가 완전히 폐지될 때까지 이용되었다.




교동1통

교동1통 전경

조선시대 관학기관인 밀양향교, 손씨고가 등이 있는 전통예절 및 忠, 孝, 禮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있는 고장이며, 시청, 미리벌관, 배드민턴경기장 등이 위치하여 행정 및 종합레저시설로 급부상 하고 있는 지역임

마을소개

마을약사(전설)

밀양향교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14호로 지정된 조선시대 관학기관으로서 임진 왜란때 소실된 것을 선조 35년(1602년)에 중건한 건물로서 향교내에는 문선왕 공자 위패를 모신 대성전외 동무,서무,내삼문,명륜당,동제,서제. 풍화루로 구성되어 있으며 매년 봄 가을 문선왕 공자를 주향하는 석전 대제를 봉행하고 있음

풍수지리 및 주요지명

  • 風水地理 : 마을앞에 凝川江이 흐르고 넓은 들이 있어, 전망이 확 트인 背山臨水의 地勢.

지명유래

  • 사동(社洞) : 향교가 있는 마을을 일명 사동리라고도 한다. 현재 교동1통을 말한다.
  • 안 골 : 교동 1통 북쪽, 향교 옆 골짜기가 교동안에 있다고 하여 안골 이라 하고 안골에 있는 못을 안골 못 이라 하며 안골 남쪽에 있는 들을 내동들이라고 하는데 현재는 들이 거의 없어지고 주택들이 산재해 있다.

찾아오시는 길

  • 자가용 : 국도 25선을 이용하여 밀양시내로 진입하여 밀양시청 방면으로이동
  • 버 스 : 밀양시내 버스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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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자 : 교동 전화 : 055-359-68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