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는 신포향인데 섶과 삽은 옛말로 음이 서로 같으므로 삽포라 이르다가 뒤에 사포라 하게 되었다. 마을앞 밀양강변에 포구가 있어 서울로 드나들던 뱃길이었다.
역시 같은 신포향이었으며 중포, 현포를 합하였다.예림서원이 있고, 억선암, 산수정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행정리동으로 후사포라 한다.
점필제 김종직선생께서 태어나신 후에 앞냇물이 달았다고 감천이라 하였다 한다.
신라의 오정부곡이다. 오례리라 하였는데 오(烏)와 오(五)는 서로 음이 같으므로 오례리(五禮里)라 하게되었다. 바위 틈에서 솟아 나는 맛이 달고 시원한 약샘이 있으며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사직단이 있었다.
밀양의 鎭山이며, 主峰의 높이는 999m정도이며, 주봉과 비슷한 또 한 봉우리가 동서를 나란히 솟아있고 그 등성이가 황소의 등을 발불케 하며, 두봉우리의 중간쯤에서 남쪽으로 또 한 봉우리가 솟아 있는데 이를 俗稱 작은 華嶽山(720m)이라고 한다. 화악이란 이름은 이 세 개의 봉우리의 형상이 중국의 五嶽의 하나인, 西嶽 즉 華嶽의 三峰과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密陽府의 案山으로 남쪽에 있어 남산이 되었고, 종'字'는 옛날 큰 海溢이 있어 온 땅에 물이 덮혔는데 南山 꼭대기가 종지만큼만 남았다는 民譚이 있어 그 종지의 종'字'를 따서 終南山이라는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 唐나라 首都의 南山이 終南이였기 때문에 우리 서울의 南山도 終南이라 하였고, 이것을 모방하여 이 密陽府의 南山도 終南山이라고 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