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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물

  • 문화재명사명대사생가지(四溟大師生家址)
  • 분류도지정문화재
  • 지정번호제116호
  • 수량(면적)1,121㎡
  • 소유자밀양시
  • 관리자밀양시
  • 소재지밀양시 무안면 사명대사생가로 642

소개

임진왜란 때 의승장(義僧將)이었던 사명대사(四溟大師)는 중종 39년(1544년)밀양시 무안면 고라리(古羅里) 풍천(豊川) 임씨(任氏)집안에서 아버지 교생(校生) 수성(守成)과 어머니 달성서씨(達成徐氏) 사이에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증조부 임효곤(任孝昆)은 문과에 급제하여 장낙원정(掌樂院正)이 되어 대구(大邱) 수령(守令)으로 있다가 밀양에서 살았는데, 사명당의 조부는 괴과(魁科)에 급제하여 강계부사(江界府使)를 지낸 유학(幼學)종원(宗元)이다.
이름은 유정(惟政) 또는 응규(應奎)라 하였고 호는 종봉(鐘峰), 송운(松雲), 사명(四溟)이다. 13세 때인 명종 11년(1556년) 유촌(柳村) 황여헌(黃汝獻) 선생으로부터 글을 배우다 "세속(世俗) 학문은 천하고 비루(鄙陋)하여 시끄러운 세상 인연에 얽매여 있으니 어찌 번뇌없는 학문을 배우는 것과 같을 것인가?" 하고 그 해 가을 황악산(黃嶽山) 직지사(直指寺)로 가서 신묵화상(信默和尙)에게 머리를 깍고 선문(禪門)에 들어가게 되었다.

사명당(四溟堂)이 출가(出家)하기전에 살던 고향집은 이전가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가 지형상 399번지가 이곳을 축으로 하여 뒷산의 주맥이 흘러 내려오고 있는 지점이라 증조부 임효곤이 풍수지리상 명당터를 잡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고, 현장의 유구를 조사한 결과 기와파편, 생활용품파편 등이 발견되고 건물물의 유구로 보이는 담장의 흔적들도 발견되어 밀양시 무안면 고라리 399번지로 결정하고 밀양시에서 생가지 정비작업을 시행(부지매입 및 기반조성, 생가지정비, 기념비건립)하여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밀양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호국사명사대의 유적지를 성역화(임란전적기념관건립, 생가지보완)하여 구국정신을 선양하고 영남루, 표충사, 얼음골 등 불교사찰 및 유적지와 연계한 관광 벨트화를 기하기 위하여 간단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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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자 : 문화예술과 전화 : 055-359-5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