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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물

  • 문화재명밀양 남산 봉수대
  • 분류도지정문화재
  • 지정번호도 기념물 제227호
  • 수량(면적)3,230㎡
  • 소유자밀양시
  • 관리자밀양시
  • 소재지밀양시 상남면 남산리 산181

소개

봉수(烽燧)는 국경 변방의 긴급한 상황을 조정 또는 변경의 기지에 알리는 군사상의 목적으로 설치된 통신수단이다. 산정과 산정을 잇는 봉수대는 밤에는 횃불(烽)로서, 낮에는 연기(燧)로서 신호하여 의사를 전달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봉수의 기원은 가락국의 수로왕이 허황후를 맞이할 때 “봉화로 신호했다”는 『삼국사기 가락국기(三國史記 駕洛國記)』의 기록을 근거로 하고, 국법으로 봉수제도가 확립된 시기는 고려 의종 3년(1149)이다.

봉수의 중요 연락 노선은 함경도의 경흥, 경상도의 동래, 평안도의 강계와 의주, 전라도의 순천 등 다섯군데를 기점으로 하여 모두 서울의 남산(木覓山)을 종점으로 연결하였는데 이 다섯 군데를 직봉(直烽)이라 하였고, 보조노선을 간봉(間烽)이라 하였는데 두 노선이 교차되는 것을 합봉(合烽)이라 하였다.

봉수의 신호체계(信號體系)는 평일에는 연기를 1번 올리고, 적이 나타나면 2번, 적이 국경 가까이 접근했을 때 3번, 국경을 침범했을 때는 4번, 교전(交戰)이 붙으면 5번을 올렸다. 그러나 구름이 많거나 바람이 심하게 불면 봉수신호(烽燧信號)가 불가능하므로 봉군(烽軍)이 차례로 달리거나 역참(驛站)의 말(馬)을 이용하여 위급함을 알렸다.

남산봉수(南山烽燧)는 제8번 간봉선(間烽線)에 해당되는 봉수로 밀양관아에서 남쪽으로 약6km지점이며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 종남산 둘째 봉우리에 있었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남쪽으로 김해 자암산(子巖山)에 응하였으나 거리가 너무 멀어 임진왜란 이후에는 백산봉수(栢山烽燧)를 신설하고, 북으로는 추화산봉수(推火算烽燧)와 연결하였는데 남북 봉수대간의 거리는 각각 8km로 고종 31년(1894)에 봉수제도가 완전히 폐지될 때까지 이용되었다.

<참고 : 밀양의 봉수(烽燧)는 가덕도 연대산봉수대에서 침입하는 왜적들의 동태를 파악하여⇒녹산 봉화산(일명: 성화례산) ⇒김해 분산 ⇒자암산(진영 봉화마을) ⇒밀양 백산⇒종남산⇒추화산⇒분항산⇒경북 청도의 남산으로 전보(轉報)하는 제8번 간봉선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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