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재명천황산 표충사(天皇山 表忠寺)
- 분류도지정문화재
- 지정번호제17호
- 수량(면적)20,026,399㎡
- 소유자표충사
- 관리자표충사
- 소재지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8
소개
표충사(表忠寺)는 신라 진덕여왕 7년(653년)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지금의 극락암(極樂庵) 자리에 초암(草庵)을 짓고 수도하던 어느날 아침 재약산 산정을 바라보니 대밭속에 5색 서운(瑞雲)이 떠오르므로 곧 하산하여 그 자리에다 가람(伽藍)을 창건하고 죽림사(竹林寺)라 불렀다. 지금도 그 흔적이 절 뒤 대밭속에 남아있다.
그 후 흥덕왕 4년(829년) 인도의 고승 황면선사(黃面禪師)가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시고 와서 이곳에 머물 때 당시 흥덕왕의 셋째왕자가 악성 피부병에 걸려 전국에서 명산과 명의를 찾던중 이곳 죽림사의 약수를 마시고 병을 치유하였다 하며, 이에 왕이 크게 감탄하고 탑을 세우고 가람을 크게 부흥시키며 왕자가 마셨던 약수를 영정약수(靈井藥水), 절이름을 영정사(靈井寺)라 하였다. 신라시대 때는 보우국사(普佑國師)가, 고려시대에는 해린국사(海隣國師)와 일연선사(一然禪師)가 머물며 선풍(禪風)을 크게 떨쳤으며, 특히 일연(一然)스님은 이곳에서 유명한 삼국유사(三國遺事)를 탈고하기도 했고, 고려 충렬왕 16년(1290년)에는 일국명찰(一國名刹)이라 일컬은 적도 있다.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으로 하루아침에 불타 버린 것을 선조 33년(1600년)에 혜징화상(慧澄和尙)이 중건하고 숙종 5년(1679년)에 실화로 불에 타 없어진 것을 다음 해에 판사 원영(判事 垣英)등 33인이 공덕주(功德主)가 되어 대규모 가람을 중건하니 8법당(法堂), 4지전(持殿), 17방(房), 15암자(庵子)였다고 전한다.
헌종 5년(1839년) 사명대사의 8세법손 월파당(月坡堂) 천유선사(天有禪師)가 관음전(觀音殿) 옛자리에 사당 3칸을 신축하여 밀양시 무안면 삼강동 영취산(靈鷲山) 표충사(表忠祠)에 있던 청허(淸虛), 송운(松雲), 기허대사(騎虛大師)의 진영(眞影)과 위패를 옮겨와 모시고 절 이름을 표충사(表忠寺)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이 절은 주위의 경관이나 절의 형국으로 보아 유서깊은 대찰(大刹)이나 수차례의 화재로 인해 최근세에 복원되었다. 그러나 불교와 유교가 통합된 한국사찰의 유연성을 엿볼 수 있어서 가치가 더한 것이다. 사찰의 배치는 평지형(平地形)으로 대광전(大光殿)과 표충서원(表忠書院)을 중심으로 두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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