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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

토기의 이해

구석기시대 식량을 찾아 무리를 지어 이동생활을 하다가 강가나 해변가에 모여서 정착생활을 시작한 신석기시대를 맞아 사람들은 식량을 저장할 도구가 절실히 필요하였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찰흙(粘土:점토)으로 만든 그릇, 토기이다. 토기를 구울 때 약 200℃에서 흙속의 수분이 빠져나가고, 600℃정도에서 염류(鹽類)에 화합되어 있는 결정수(結晶水)가 없어진다. 다시 그 이상 높은 열을 가하면 염류(탄산염,유산염) 자체가 분해되어 진흙이 단순히 건조시킨 것과는 달리 단단하게 된다.

대체로 토기라 함은 진흙 속에 포함되어있는 혼합물 중 광물질(鑛物質)은 녹지않고 염류만 분해되어 찰흙의 질적 변화를 가져오는 500℃ 이상에서 구워진 것을 말한다. 토기는 소성온도에 따라 구분되는데 600℃∼700℃에서 소성되는 와질토기와 700℃∼900℃에서 소성되는 연질토기, 1,000℃ 의 고온에서 구워진 경질토기로 나뉜다.

토기·도기·자기의 구별

  • 토기(土器)와 도기(陶器)의 원료는 화강암(花崗巖)·석영암(石英巖) 등이 풍화되어 만들어진 찰흙(粘土:점토)이다. 그러나 도기는 연질토기보다 고온(1,000℃ 이상)에서 굽는다. 가야토기·신라토기와 같은 것인 경질토기(硬質土器)를 말한다. 자기(磁器)의 원료는 유리의 원료가 되는 규산(산화규소)이 많이 함유된 장석(長石)이 탄산(炭酸)과 물에 화학적으로 분해되어 진흙이된 고령토(高嶺土)를 태토로 사용하여 모양을 만든 뒤 잿물(釉藥)을 바르고 고온(1300℃ 이상)에서 굽기 때문에 그릇 자체가 완전 유리질화(琉璃質化)한 것을 말하는데, 우리가 흔히 사기(砂器)라고 부른던 그릇을 기억하면 구분이 쉽다.

토기와 자기의 모양 만들기

  • 반죽한 흙으로 그릇 모양을 만드는 것을 성형(成形)이라 부른다. 손으로 직접 만들 경우 대체로, ① 반죽한 진흙을 직접 손으로 그릇 모양을 만드는 방법(수날법:手捏法), ② 반죽한 흙을 가락지처럼 만들어 원하는 모양으로 쌓은 후, 접속부분은 손으로 문질러 그릇의 두께나 표면을 다듬는 방법(윤적법:輪積法), ③ 반죽한 흙으로 굵고 둥근 선을 길게 만들어 이것을 '코일'처럼 감으면서 원하는 모양을 만들고, 접속 부분은 손으로 문질러 그릇의 두께나 표면을 다듬는 방법 등이 있다. 모양이 만들어지면, 물손질, 긁기, 빗질, 깎기, 점토막입히기 등을 이용하여 그릇의 표면을 고르게 만든 뒤 그늘에 말리게 된다. 물레가 들어온 뒤에는 회전판 중심에 축(軸)을 세워 회전판을 손으로 천천히 돌리면서 만들다가 손이나 발을 사용하여 물레의 회전이 빠르도록 개량하여 만드는 방법이 이용된다.

토기의 문양 넣기

  • 토기의 문양은 그릇의 모양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기도, 성형이 끝난 뒤 그릇을 장식하며 생긴다. 'ㄱ자' 같은 격자문(格子文)이나, 새끼줄 같은 승석문(繩蓆文)의 문양은 성형 과정에 격자(格子)나 새끼를 감은 방망이로 표면을 두드릴 때 나타난다. 그리고 인간은 무엇인가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기원(祈願), 혹은 미적(美的) 표현을 위해 새겼다. 문양을 넣는 방법은 점토를 그릇의 표면에 덧붙여 형상을 나타내는 부문(孚文), 그릇의 표면에 문양을 파는 각문(刻文), 도장으로 눌러 문양을 넣는 압인문(押印文), 그리고 드물게 물감으로 문양을 표현하는 채색문(彩色文) 등의 방법이 이용되었다.

가마의 변천

  • 진흙으로 그릇의 형태를 만들고 문양을 넣은 다음에 가마에 넣어 굽는 과정을 소성(燒成)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가마(窯:요)가 없고 평지에 건조된 형태를 놓고 그 위에 나무를 쌓아 굽거나,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형태를 넣고 불을 질러 굽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가마도 처음에는 공간 위에 지붕을 만들고 바닥에서 불을 때어 불꽃 위에서 토기가 구워지는 수직가마(垂直窯:수직요)가 이용되었다. 그후 다시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연기와 불꽃이 연도(煙道)를 따라 수평으로 빠져나가면서 구워지는 수평가마(水平窯:수평요)와 연기와 불꽃이 비스듬히 경사진 바닥을 통과하면서 구워지는 오를가마(登窯:등요)가 나타났는데, 지금은 주로 오를가마를 이용하고 있다.

토기나 자기를 굽는 방법

  • 토기를 구울 때 가마에 산소를 충분히 공급하면서 굽는 방법과 산소를 가능한 차단하면서 굽는 방법이 있다. 가마에 산소의 공급을 충분히 할 경우, 태토(胎土) 속의 철분이 산소와 결합하여 산화제2철(Fe2O2)로 바뀌어 토기의 색깔은 밝은 적갈색(赤褐色)이 나타나는데, 이를 산화염법(酸化焰法)이라 부른다. 반대로 산소가 부족하게 되면 태토 속에 함유된 철분에서 오히려 산소를 빼앗아가 산화제2철(Fe2O2)이 산화제1철(FeO)로 바뀌는 환원염법(還元焰法)이 일어나 두드리면 금속음을 내며 수분 흡수가 적은 어두운 회청색(灰靑色)으로 변한다.

이른민무늬토기(原始無文土器:원시무문토기)

  • B.C. 6,000∼4,000년경에 사용된 신석기시대 토기로,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 부산 영도 동삼동, 강원도 양양 등, 동해안을 따라서 발굴되는 이 토기는 신석기시대에 가장 널리 사용된 빗살무늬토기보다 앞서 사용되었으며 바닥이 평평하며 계란을 반으로 쪼갠 모습이거나 표면에 진흙을 더덕더덕 칠하거나 "之"자 모양의 덧띠가 있는 모습이다.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즐문토기)

  • 청동기시대에 돌로 만든 간단한 추수용 도구. 등 쪽에 구멍이 뚫렸고 날 쪽이 둥긋하다. 곡식의 이삭을 따는 데 쓰였다.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

  • B.C. 4,000∼2,000년 사이에 사용된 토기로 우리 나라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 물고기 뼈(魚骨紋:어골문)와 비슷한 기하학적(幾何學的)인 무늬가 특징인 이 토기는 주로 밑이 뾰족한 'V'자 모양의 회색(灰色) 토기이다. 이 시기에는 해안이나 강가에 주로 살면서 간단한 농사와 가축을 기르고, 뼈낚시를 이용해 고기잡이를 하고, 뼈바늘을 이용하여 옷이나 그물을 만들었다고 믿어진다. 부산 동삼동, 함경북도 웅기 굴포리, 서울 암사동 등에서 출토되었다.

민무늬토기(無文土器:무문토기)

  • B.C. 1,000년경에 사용된 우리 나라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 토기의 표면에 무늬가 없고 바닥이 평평하고 그릇에 목이 달린 것이 많은 것이 특징이며, 빗살무늬토기보다 모래가 많이 섞여 표면이 거칠다. 이 시기는 인류 역사상 매우 주요한 시기로, 농업 생산이 급격히 늘어나고 점차 정치 조직도 생겨났다. 이 시기에는 석기 대신 구리에 아연(亞鉛)이나 주석(朱錫)을 넣고 합금한 청동을 이용하여 도구나 무기를 만들었으며 고인돌(支石墓), 선돌(立石)을 비롯한 거석문화(巨石文化)도 나타났다.

붉은토기(紅陶:홍도)

  • 붉은토기는 신석기시대 어느 시점에서 시작되어 청동기시대와 초기철기시대에 만들어졌던 토기이다. 청동기시대에는 점토를 걸러서 모래가 적게 섞인 찰흙으로 그릇 모양을 만들고 표면에 붉은색을 내는 산화철을 발라 곱게 문질러 붉은 색 윤기가 나도록 하였다. 지금까지 중국 화북지방 앙소문화(仰韶文化)의 영향을 받은 토기로 알려졌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며, 신석기시대 부산·경남 지역의 패총에서 주로 발견되는 붉은 토기가 발전한 것으로 보여진다.

김해토기(金海土器:김해토기)

  • 김해지역을 비롯하여 한강 이남에 분포된 적갈색이 또는 회청색 경질토기로 대부분 900℃∼1000℃에서 구워졌다. 청동기시대 붉은간토기(홍도)처럼 입자가 고운 찰흙을 사용하였다. 토기 안에는 빗질을 하였고 표면에는 껍질에 돌기선이 있는 조개를 이용하여 마무리하였는데, 항아리에는 격자문(格子文)이나, 새끼줄 같은 승석문(繩蓆文)이 예외 없이 있는 것이 김해토기의 가장 큰 특징이다. 김해 회현리 패총에서 발견된 것이 대표적인 것이기 때문에 김해토기로 부르지만, 한강 이남의 모든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신라토기(新羅土器)

  • 신라토기는 대체로 원삼국시대 말기인 2∼3C에 만들어진 신라지역의 토기를 말한다. 일부 다른 주장도 있으나 가야와 신라 두 지역의 토기를 포함한다. 회색(灰色)이며 유약(釉藥)을 바르지 않은 것은 김해토기와 같으나 1300℃ 정도에서 구웠기 때문에 광물질인 규사(硅砂)가 녹아 완전히 유리질화(琉璃質化)하여 두드리면 금속성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모양은 목긴항아리(莊頸壺:장경호), 목짧은항아리(短頸壺:단경호), 고배(高杯)등이 주류를 이루며, 각종 동물 모양의 토기도 있다. 김해토기에서 출발한 가야·신라 두 지역의 토기는 모양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편의상 분류한 것이다.

신라토기와 가야토기의 차이

신라토기와 가야토기는 비슷한 구성을 가지고 있고 제작기술 또한 거의 비슷하지만 몇 가지 차이점을 가진다. 목긴항아리의 경우 신라토기는 목과 어깨의 접착부분이 각(角)을 이루며 꺾이는 데 반해서, 가야토기는 곡선을 이루며 연결된다.

한편 가야토기는 그릇받침(器臺:기대)을 별도로 만든 것이 많고 신라토기는 그릇에 붙은 것이 많다. 굽다리접시(苦杯:고배)의 경우, 신라토기는 접시의 깊이가 가야토기에 비하여 깊은 편이며, 다리의 투창(透窓)도 신라토기는 상하가 어긋나는 반면에 가야토기는 상하가 일렬로 배치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통물형토기와 높은 원통형 그릇받침도 가야토기의 특징에 속한다.

신라토기파배(新羅土器杷杯)

  • 신라시대의 토기로 손잡이가 달린 잔.

신라토기골호(新羅土器骨壺)

  • 신라시대의 토기로 사람의 유골을 담아 매장하는 데 사용한 항아리이다.

신라토기사리호((新羅土器舍利壺)

  • 신라시대의 토기로 승려의 사리를 담는데 사용한 항아리이다.

신라토기대호((新羅土器大壺)

  • 신라시대의 토기로 큰 항아리이다.

신라토기유대발(新羅土器有大鉢)

  • 신라시대의 토기로 받침이 있는 그릇이다.

신라토기원저장경호((新羅土器圓底莊頸壺)

  • 신라시대의 토기로 밑이 둥글고 목이긴 항아리이다.

신라토기고배((新羅土器高杯)

  • 신라시대의 토기로 굽다리가 달린 높은 접시이다.

신라토기발형대(新羅土鉢形臺器)

  • 신라시대의 토기로 주발모양의 그릇 받침대이다.

신라토기유대장경호((新羅土器有臺莊頸壺)

  • 신라시대의 토기로 그릇 받침대가 있는 목이 긴 항아리이다.

신라토기원저소호((新羅土器圓底小壺)

  • 신라시대의 토기로 밑이 둥근 목이 짧은 작은 항아리이다.

신라토기원저단경호(新羅土器圓底短頸壺)

  • 신라시대의 토기로 밑이 둥근 목이 짧은 항아리이다.

신라토기유대단경호(新羅土器有臺短頸壺)

  • 신라시대의 토기로 그릇 받침이 있는 목이 짧은 항아리이다.

신라토기유대발(新羅土器有臺鉢)

  • 신라시대의 토기로 그릇 받침이 있는 주발그릇이다.

신라토기대(新羅土器臺)

  • 신라시대의 토기로 그릇 받침이다.

신라토기발(新羅土器鉢)

  • 신라시대의 토기로 주발그릇 이다.

신라토기병(新羅土器甁)

  • 신라시대의 토기로 병이다.

고려토기매병(高麗土器梅甁)

  • 고려시대의 토기로 목이 매우 좁은 병으로 경질토기. 토기는 통일신라이후 급격히 자기(磁器)로 변화되었지만 고려초까지도 일반 서민들은 토기를 사용하였다.

토제소호(土製小壺)

  • 토기로 만든 작은 항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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