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 전시실
 ㅇ 1층 전시실




의열정신의 본향, 그 원동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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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애국정신과 종교의 단합
밀양은 여러 종교의 어울림 터이면서 단합의 장이기도 했다. 일찍이 만주로 망명하여 동창학교를 세웠고 후일 대종교 3대 교주가

된 단애 윤세복과 그의 형 윤세용 및 휘하의 신도들, 호국불교의 본산이 되어 신도들의 교육계몽과 청년운동에 주력했으며

1919년 4월 4일 단장면 용회리의 독립만세시위를 선도한 표충사 스님들, 밀양 장터에서의 3․13 만세시위에 쓰일 태극기를

제작하고 치마폭에 숨겨 시위군중에게 나누어준 밀양교회 여성 신도들, 마을 주민의 만세시위를 주도한 춘화리 교회 등이

모두 그러했다. 신앙대상과 교리는 서로 달랐지만 구국항일에는 한마음이 되어 언제나 긴밀한 연계를 맺으며 독립전선에

나선 것이다.
ㅇ 민족교육의 요람들
이 고장 출신인 점필재 김종직의 유교적 절의정신과 사명대사 유정(惟政)의 충의호국정신을 낳고 기려온 밀양은 일찍부터

‘충절의 고향’이었다. 그 정신을 이으면서 1890년대부터 연이어 세워진 밀양의 신식학교들, 즉 부부면 퇴로리의 화산의숙과

밀양 읍내의 개창학교, 진성학교, 동화학교 등에서 훗날 밀양 독립운동의 근간을 이룰 청년인재들이 속속 육성되어갔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도 동진학원, 집성학교, 정진학교, 계성학교 등의 여러 사립학교가 밀양군내에 개설되어, 조국독립의 길에

투신할 인재들을 길러내고 밀양 3.1운동의 발화점이 되기도 하였다.
ㅇ 일제의 수탈과 밀양
북․동쪽은 산간지대이지만 남쪽으로 낙동강․밀양강 유역에 드넓은 평야가 전개되어 곡창지대를 이루고 있던 밀양은

일제의 한국강점 초기부터 가혹한 수탈에 시달렸다. 1918년까지 실시된 ‘조선토지조사사업’으로 인해 전래의 경작권을

잃거나 소작농으로 전락한 수많은 농민들이 각종 세 부담 급증 등으로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1918년 일본 전역을 뒤흔든

‘쌀 폭동’이 일어나자 일제는 안정적인 식량공급선 확보를 꾀하여 식민지 조선에서의 ‘산미증식’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 계획의 실시로 쌀은 약간 증산되었으나 일본으로 반출되는 양이 급격히 늘어났다. 그 결과, 일본 국내의 식량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조선농민의 삶은 피폐해졌고, 쌀을 증산하면서도 잡곡을 더 많이 먹게 되었다. 더욱이 밀양은

경남의 다른 지역에 비해 소작요율이 높았기 때문에 농민들의 삶은 더욱 힘겨웠다. 또한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물자부족 상황이 초래되자 일제는 강제공출에 의해 농산물 수탈을 강화시켜갔다. 이와 같이 일제가 끊임없이 벌여간

수탈정책은 밀양인의 생존권을 짓밟았고, 이는 밀양에서 민족해방운동이 치열하게 일어나는 한 조건이 되었다.



ㅇ 대한독립선언서
1919년 음력 2월 1일 만주지린에서 발표된 대한독립선언서는 조소앙이 기초하였다. 한일병합의 강제성․불법성과

기만성을 적시하여 무효임을 선언하고, 2천만 동포가 합심하여 “육탄혈전으로 독립을 완성”할 것을 호소하였다. 동경

유학생의 2.8독립선언 및 국내의 3·1독립선언과 더불어 3대 독립선언서의 하나로 꼽힌다. 서명자는 김교헌·김규식·

김동삼·김약연·김좌진·김학만·문창범·박성태·박용만·박은식·박찬익·손일민·신규식·신채호·안정근·안창호·

여준·유동열·윤세복·이광·이대위·이동녕·이동휘·이범윤·이봉우·이상룡·이세영·이승만·이시영·이종탁·이탁·

임방·정재관·조용은·조욱·최병학·한흥·허혁·황상규 등 만주․노령지역 중심의 독립운동가 39인이었는데, 밀양

출신인 손일민·윤세복·황상규 등 3인도 같이 참여하였다.


ㅇ 밀양독립운동
일제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애국충절의 고향 밀양에서는 근대교육기관을 설립하여 국권회복을 위한 인재를

양성하고 비밀결사조직을 만들어 항일구국운동과 민족독립투쟁에 앞장섰으며, 많은 주민의 참여로 시기별 다양한 형태의

독립운동이 전개되었다.

화산의숙, 개창학교, 진성학교, 동화학교 등의 애국계몽 및 국권회복을 위한 민족교육과 일합사, 연무단 등의 비밀결사운동에

뒤이어, 대규모의 만세운동으로는 영남지역 최초의 것이라 할 수 있을 3.13 밀양장날 만세시위를 비롯한 총8차례의 만세운동이

벌어졌고, 3.1운동 이후 밀양인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비상한 각오의 결사대적 소수 인원으로 기동성 있는 행동에 나선 의열단의

암살파괴운동이 전개되어 갔다.

그 후 대일타협적인 자치론의 등장에 맞서 순정한 항일민족운동 세력의 통일과 단결 강화 및 군민권익 옹호를 목표로 1927년

12월에 창립된 신간회 밀양지회와 여성의 단결과 지위향상을 위해 1928년 4월 창립된 근우회 밀양지회

등이 주도해간 대중운동도 활발하였다.

국외에서는 독립운동과 새나라 건설의 골간이 될 기초간부 양성기관으로서 김원봉과 윤세주가 각각 교장과 교관이 되어 이끌어간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김원봉이 총서기를 맡아 민족전선통일운동을 역동적으로 전개했고 독립운동 과정의 최대의

좌우세력 결집 조직이 된 ‘조선민족혁명당’, 중국 관내지역에서의 한인군사조직에 의한 항일무장투쟁의 단초이며 한중연합전선

구축의 토대를 이루었고 한국광복군 확충과 조선의용군 창설의 인적 자원을 보총․공급해주기에 이르렀던 ‘조선의용대’가

독립운동사 속에서 밀양인의 주도로 이루어진 거대한 성과이다.

그만큼 다양하고 풍부한 내용을 가졌던 밀양인의 독립운동은 우리나라 전체 항일독립운동 역량 강화의 바탕이 되면서 그 내실을

다지게끔 해주었던 것이다.

ㅇ 의열단 공약 10조

1. 천하의 정의의 사(事)를 맹렬히 실행하기로 함.

2. 조선의 독립과 세계의 평등을 위하여 신명을 희생하기로 함.

3. 충의(忠義)의 기백과 희생의 정신이 확고한 자라야 단원이 됨.

4. 단의(團義)에 선(先)히 하고, 단원의 의(義)에 급(急)히 함.

5. 의백(義伯) 1인을 선출하여 단체를 대표함.

6. 하시하지(何時何地)에서나 매월 1차씩 사정을 보고함.

7. 하시하지(何時何地)에서나 초회(招會)에 필응(必應)함.

8. 피사(避死)치 아니하여 단의(團義)에 진(盡)함.

9. 1이 9를 위하여, 9가 1을 위하여 헌신함.

10. 단의에 반배(返背)한 자를 처살(處殺)함.

ㅇ 7가살

1.조선총독 이하 고관

2.군부 수뇌

3.대만 총독

4.매국적(賣國賊)

5.친일파 거두

6.적의 밀정

7.반민족적 토호열신(악덕 지방유지)

ㅇ 5당파(當破)

1.조선총독부

2.동양척식회사

3.매일신보사

4.각 경찰서

5.기타 외적 중요기관

의열단이 ‘7가살’과 ‘5당파’를 명시적으로 규정한 것은 가시적인 투쟁대상의 범위를 확대시킴과 아울러 구체화 ․ 세분화 ․

체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광복회 강령에서처럼 단순히 ‘일인 고관’과 ‘한인 반역자’라고 하는 막연한 규정에서 나아가,

총독정치의 우두머리 및 하수인 모두(‘조선총독 이하 고관’ ‘군부 수뇌’)와 친일반역자 집단 모두(‘매국적’ ‘친일파 거두’

‘적탐’ ‘반민족적 토호열신’)를 세분해 구체적으로 열거하면서 ‘가살’의 대상으로 따로 규정한 점, 이와 병행하여 식민지

지배의 핵심기관(정치기관으로서의 조선총독부, 수탈기구로서의 동양척식회사, 선전기관으로서의 매일신보사,

폭압기구로서의 각 경찰서)을 ‘파괴’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인식을 가졌던 점은 확실히 진보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ㅇ 의열단 최고이상 4항목
구축왜노(驅逐倭奴): 왜놈을 몰아낸다
광복조국(光復祖國): 조국을 되찾는다
타파계급(打破階級): 계급을 없앤다
평균지권(平均地權): 토지를 골고루 나눈다
ㅇ 의열단강령 20개조
1. 조선민족 생존의 적인 일본 제국주의의 통치를 근본적으로 타도하고 조선민족의 자유독립을 완성함.
2. 봉건제도 및 일체 반혁명세력을 삭제하고 진정한 민주국을 건립함.
3. 소수인이 다수인을 박삭(剝削)하는 경제제도를 소멸시키고 조선인 각개의 생활상 평등의 경제조직을 건립함.
4. 민중경찰을 조직하고 민중의 무장을 실시할 것.
5. 인민은 언론ㆍ출판ㆍ집회ㆍ결사ㆍ주거에 절대 자유권을 가짐.
6. 인민은 무제한의 선거 및 피선거권을 가짐.
7. 1군(一郡)을 단위로 하는 지방자치를 실시함.
8. 여자의 권리를 정치ㆍ경제ㆍ교육ㆍ사회상 남자와 동등하게 함.
9. 의무교육과 직업교육을 국가의 경비로 실시함.
10. 조선 내 일본인의 각 단체(동양척식회사 ․ 불이흥업 ․ 조선 은행 등) 및 개인(이주민 등)에게 소유된 일체 재산을 몰수함.
11. 매국적 ․ 탐정 등 반도(叛徒)의 일체 재산을 몰수함.
12. 조선인민 생활상 침해가 되는 외국인의 일체 재산을 몰수함.
13. 대지주의 토지를 몰수함.
14. 농민운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빈고(貧苦) 농민에게 토지 ․ 가옥 ․ 기구 등을 공급할 것.
15. 공인운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노동평민에게 가옥을 공급함.
16. 양로 ․ 육영(育瓔) ․ 구제 등의 공공기관을 건설함.
17. 대규모의 생산기관 및 독점성질의 기업(철도ㆍ광산ㆍ기선ㆍ전력ㆍ수리ㆍ은행 등)은 국가에서 경영함.
18. 소득세는 누진율로 징수함.
19. 일체의 잡세를 폐제(廢除)함.
20. 해외거류 동포의 생명 ․ 재산의 안전을 보장하고 귀국동포에게 생활상 안전한 지위를 부여함.
1925 ․ 6년경에 의열단이 맞게 된 정치적 환경의 변화, 국내 민중의 동향, 국내외 민족운동 및 사회운동계의

새로운 움직임 및 그 내부의 세력각축상 등이 여러모로 투영되어 1926년 12월에 제정한 20개 조의 강령은 의열단이

‘최고 이상’으로 삼아온 ‘구축왜노 ․ 광복조국 ․ 타파계급 ․ 평균지권’의 사상, 다시 말해 반일 민족독립과

반봉건 민주변혁 사상으로 관통되고 있다. 그리하여 인민의 자유 ․ 평등 ․ 복지(생활)권이 철저히 보장되는

독립-민주국가의 건설이 궁극적인 지향점으로 설정되고 있으며, 각 조항을 통하여 적시된 문제들의 범위는 매우

넓되 표현이 구체적이어서, 민족의 전도와 신국가의 미래상을 실감나게 보여 주고 있다.

의열단 창립 당시 공약 10조에 비해 구체적 ․ 진보적 성향을 함축한 이 선언은 이미 결의된 혁명정당으로서의

전환 방침을 구체화 한 것이고, 1927년 천명한 통일적 총지휘기관을 확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혁명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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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조선혁명선언
1923년 1월에 발표된 조선혁명선언 (일명,의열단선언)은 의열단 투쟁노선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하여

약산 김원봉이 단재 신채호에게 부탁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의열단의 이념을 체계화하고 , 항일 독립운동의 방향을 밝힌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