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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명칭유래--삼랑진읍

연혁

  • 조선 고종 21년(서기 1894년)에 밀양군 하동면이라 칭함.(당시 13개리 59개 마을)
  • 1904년 토지구역 변경 시 김해군 류도 마을을 본읍 송지리에 편입
  • 1928년 1월 28일 하동면을 삼랑진면으로 개칭(조선총독부 경상남도회 제2호)
  • 1963년 1월 1일 삼랑진면에서 삼랑진읍으로 승격(법률제1172호)
  • 1966년 7월 15일 밀양군 조례 제103호로 임천출장소 설치
  • 1976년 12월 7일 도시계획결정고시(건설부고시제194호)
  • 1977년 4월 27일 도시계획지적고시가 확정되어 현재에 이름.

명칭유래

삼랑진읍사무소는 송지리 외송마을 중앙 시장부근에 위치해 있다. 삼랑진읍의 원래 명칭은 하동면이었다. 밀양군의 동편 하부에 위치해 있으므로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와서 하동은 일본어 발음상 下等과 통한다 하여 삼랑진역명을 따서 삼랑진읍으로 개칭하였다.
삼랑진읍이 일제 강점기에 유명하게 된 것은 진해군항과 마산, 진주방면으로 가는 철도분기점인 동시에 일본인이 경영하는 과수원이 전국적으로 이름난 곳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일본인 이민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 헌병대와 경찰서 등이 이곳에 주둔하고 있었다.

법정동 연혁 및 명칭 유래
林 川 里 이 마을과 상남면 평촌마을 중간에 남천강이 흐르고 있어서 옛날에는 이 마을 앞에 도선장이 있었다. 양 지역을 왕래하는 나룻배를 기다리는 여객들의 휴식처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심은 것이 무성하게 자라 숲이 되었는데, 여기에서 임천(林川)이라는 마을명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崇 眞 里 과거 임진왜란 당시에 이 마을 주민들이 사명대사를 도와 왜적에 항거하였다. 사명대사가 이와 같은 주민들의 협조에 감사하며 숭진(崇眞)이라는 마을명을 지어주었는데, 이는 불교의 진리를 깨우치며 숭상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靑 鶴 里 옛날에는 이 마을의 앞에 남천강 유역 억새밭이 펼쳐져 있어 학이 많이 날아와 서식하였다. 또한 마을 뒷산에는 청송이 울창하였는데, 이로써 청송 백학의 일대장관을 볼 수 있는 마을이라 하여 『靑』자와 『鶴』자를 따서 청학리라 부르게 되었다.
龍 星 里 龍星里는 청용, 칠성, 송백(솔베기), 신기, 인전마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마을 앞에 있는 넓은 못(池)에 용이 살고 있었는데, 신에게 죄를 지은 일이 있어 승천하지 못하고 하늘의 별만 쳐다보고 울다가 죽었다고 한다. 이 전설에서 용성이라는 지명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龍 田 里 龍田里는 사기점, 용어, 직전, 숲밭, 상신기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자씨산 계곡과 연못에 독룡(毒龍)이 살고 있어 봄철이 되면 마을로 내려와 농민의 전답을 황폐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에 용의 밭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용전(龍田)이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美 田 里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에 대미, 중마을, 무흘, 입성, 화성과 삼랑리에 속했던 대신을 병합하여 미전리로 법정리(法定里)를 삼았다. 옛날에 농토가 비전박토라 농사짓기가 어렵고 농민들의 생활이 곤란하였기에 비전을 아름다운 밭으로 가꾸자는 뜻을 담아 미전(美田)이라 불렀다고 한다.
三 浪 里 三浪里는 낙동강 본류와 진주방면의 남강, 밀양 남천강 등 세 갈래의 물결이 서로 부딪쳐서 거센 곳이라 하여 삼랑(三浪)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예로부터 삼랑진 나루터가 유명하였고, 김해와 강을 건너 마주하는 수운 교통의 요충지였다.
松 旨 里 옛날에는 낙동강이 마을 중심에 흐르고 있어 사람들은 뒷산 소나무 숲에서 거주하였다고 한다. 삼랑진 제방을 축조하기 전까지 松旨里는 상습 수해지였다. 홍수로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부족해지면 주민들이 초근목피로 연명하곤 했는데, 이에 소나무숲(松林)에서 송피(松皮)맛으로 살아왔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송지(松旨)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栗 洞 里 栗洞里는 율곡, 광천, 무곡, 칠기점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의 중심부에는 비교적 넓은 고지대의 경작지와 저습지가 있고, 그 양쪽에 갈미봉과 삿갓봉이 서로 마주 보면서 동서로 산악을 이루고 있는 산중의 마을이다. 율곡이라고도 부르고 있는데 이는 마을 주위에 밤(栗) 생산이 많아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牛 谷 里 조선 영조 대에 이 마을의 소(牛)가 전염병으로 모두 죽어버린 일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소가 없어 몇 년째 농사를 짓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건강한 소 두 마리가 마을에 들어왔다. 마을 주민들이 돌아가며 소를 부렸는데, 소들이 그만 과로한 탓에 죽고 말았다. 마을 주민들이 슬퍼 눈물을 흘리며 마을 언덕에 소를 고이 묻어주었는데 이후로는 해마다 마을에 풍년이 들어 잘 사는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이에 소를 묻은 언덕이라는 뜻으로 마을을 우곡(牛谷)이라 부르게 되었다.
儉 世 里 儉世里는 본검세, 검곡, 후검, 송원, 작원마을 등을 합해서 이르는 명칭이다. 옛날 마을 주민들이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고 있을 때 도사 한 분이 마을을 지나가다 근검절약하여 곤경을 극복하라 일러주었는데, 이때 도사가 안빈낙도의 이치를 설명하고 마을 이름을 검세(儉世)라 지어 주었다고 전해진다.
安 台 里 安台里는 배양, 동양, 서봉마을을 합해서 부르는 이름이다. 원래는 마을의 평안과 태평을 기원하는 뜻에서 『安泰里』라고 쓰고 있었으나 뒤에 천태산(天台山)이 있어 『泰』자를 『台』자로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앞으로는 낙동강이 굽이치며 흐르고 뒤로는 천태산이 우뚝 솟아 있는 배산임수의 명지이다.
杏 谷 里 杏谷里는 삼랑진읍의 동쪽 끝에 있는 마을이다. 행곡(杏谷)이라는 지명은 행곡, 남촌, 통점, 구남, 안촌, 숭촌 등을 합해서 부르는 이름인데, 골짜기마다 살구나무가 많아 봄철이 되면 꽃이 만발하는 아늑한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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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랑진읍 055-359-6502
최종수정일 :
2017.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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